오후에는 다같이 산책을 나갔다.
그냥 샤또 주변을 간단하게 한바퀴 돌고 올거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나갔는데 알고보니 산을 하나 넘는 10km 강행군이었다. 남들이 챙기길래 우리도 따라서 물 한 병을 챙겼기에 망정이지..;;

보졸레답게 와이너리가 마을 전체에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 사이로 가족들이 한줄로 나란히 걸어가는데 어린시절 봄소풍가던 기분이 들어서 너무 좋았다. (아직 초반이라 기운이 넘침)

야생토끼를 세마리나 봤다. 누군가 "토끼다!"하고 외치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리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프랑스 야생토끼는... 귀여운 맛은 없는 듯...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준 그레고리 가족. 저 커플과 큰 딸이 맨 앞에 서서 우리를 이끌어주었다.
생각보다 행군이 길어지자 이들은 무리한 지름길을 택했다.
멀리 돌아가는 대신에 가파른 포도밭 사이를 질러 올라가자는 잔인한 결정을 내려버림 ㅠ.ㅠ

으앙... 한번만 올라가면 되는지 알았는데 세번이나 연속으로 이어지는 너무나 가파른 포도밭길 ㅠ.ㅠ
뒤쳐지는 인원들이 속출했고 내가 안간다고 할까봐 버거씨는 뒤따라 올라오면서 내 등을 계속해서 밀어주었다. 사실 그 덕분에 진짜 수월하게 오를수 있었다. 등뒤에서 나를 계속 밀어주니 저절로 올라가지네?

이 아찔한 경사길을 진짜 끝까지 올라오다니!
일단 올라오고 보니 경치도 너무 좋고 바람도 불고 기분이 좋아서 이곳에서 단체 사진도 찍었다.
솔직히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8살 소녀부터 80세 고모님 커플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올라왔다. 리스펙트! (인간 부스터를 등뒤에 달고 쉽게 올라온 나는 좀 부끄... )

너무나 아름다운 보졸레!
이런 경치를 매일 보고 산다면 마음의 여유가 없을수가 없지…
힘든 구간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산속으로 들어가는 우리들.

앞에 꼬맹이들도 잘 걸어가는데 내가 불평할 수야 없지.

좁게 난 숲속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오르막이 이번에도 계속해서 나왔다. 그럴때마다 내 등뒤에서 인간 부스터가 작동했다. 버거씨는 힘도 좋지. 혼자 오르기도 힘들텐데 오르막을 오르는 내내 내 등뒤에서 손을 떼지를 않고 계속 밀어주다니. (마지막에는 심지어 업어줬다ㅋㅋ 애들 앞에서 좀 민망하긴 했지만 뭐 어때 나는 마흔네살 어린이ㅋ)

산 정상에는 운치 있게도 성당이 나타났다.

우와... 고생을 보상받는 파노라마가 눈앞에 펼쳐졌다. 바람도 쌩쌩불고 넘나 상쾌한 것!

내려오는 길은 좀 더 수월하고 재미있었다.
누군가 "차 온다!" 외칠때마다 길 가장자리로 일행들이 바짝 붙었다. 아무래도 스므명 넘는 인원들이 한줄로 쭈르륵 서서 바라보는 장면은 운전자 입장에서 재미있기도 했을것 같다.
"여기서 기차 기다리는거유?"
한 나이든 운전자의 농담에 다같이 크게 웃었다.
누군가 "자전거온다!" 라고 외쳤을때 우리는 똑같이 장난처럼 길옆에 한줄로 붙어서 자전거를 탄 아저씨가 지나갈때까지 지켜보았는데 그 아저씨는 민망해하시면서 "나는 차도 아닌데 안 그래도 되는데..." 라고 말해서 또 한번 다같이 웃었다.
작은 마을을 지날땐 마주치는 사람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봉쥬"하며 밝게 인사를 나눴다.
낯선 사람들과도 이렇게 살갑게 교류하고 웃는거 너무 좋다 정말.


안녕 말! 너 참 잘생겼구나.

여전히 팔팔하신 팔순의 고모님 커플 너무 존경합니다! 저 두분은 심지어 아침에도 3km정도 산책을 다녀오셨다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그럼 오늘 두분은 13km 넘게 걸으신건가요!
와...

힘들다며 투덜거리던 릴루도 평지에서부터는 다시 발랄해졌다. 사촌 언니랑 다투었다며 조금전까지 내 손을 잡고 걸으면서 하소연하더니 금새 사촌언니랑 다시 화해했네.

샤또 근처에 돌아왔을때 소들이 우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소들아 안녕!

나랑 버거씨가 맨 앞에서 걷고 있었는데 뒤에오던 그레고리네 남매가 갑자기 앞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너네 저녁 준비하려고? 착하기도하지!"
버거씨의 말에 남매를 포함해서 뒤에오던 사람들 모두 크게 웃었다.
아닌게 아니라 벌써 시간이 8시가 넘었다. 배고픈데 저녁은 이제 가서 준비해야하는건가요...
이번 행군에 유일하게 빠진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버거씨네 아버지와 새어머니였다. 사람들은 그 두사람이 분명 저녁을 준비해 놓고 우릴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농담을 했다.
10Km를 걸었으니 다들 식욕이 폭발할 것 같다. 나도 많이 먹을 준비 됐음!
저녁식사 에피소드는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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