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도 우리는 느지막히 샤또로 갔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자느라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전날 새벽까지 가라오케를 하느라 다들 늦게 잠자리에 들었단다. 어제 누가 얼마나 웃겼는지 사촌들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엌에서는 막내 고모님(릴루네 할머니)께서 오늘의 점심때 먹을 디저트를 만들고 계셨다. 계란 흰자 머렝을 초코무스에 섞고 계셨는데 오늘 디저트도 엄청 맛있겠구나! 그러고보니 오늘 점심 당번은 릴루네 가족이라고 했지 참~
옆에서는 식전에 먹을 아뻬로 안주로 구워지고 있었는데 모양이 참 특이하다.
문화가 다르니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녹차를 한 잔 들고 수영장으로 갔다. 릴루가 내 이름을 부르며 열렬히 반겨주었다.
버거씨네 아버지께서 아이들에게 농담을 건네고 계셨다.
릴루는 자꾸만 나더러 자기네 엄마 수영복을 빌려준다고 같이 수영을 하잔다. 마음은 참 고맙지만.. 다음 기회에~
잠시 후 방상이 땅콩을 들고 수영장으로 나왔다.
"제랄딘이 이거 빻으라고 시켰거든..."
"아하! 낮에 파타이 한다고 했지? 거기에 넣으려고 미리 준비하는거구나."
방상이랑 조용하게 대화할 기회가 생겨서 내심 좋았다. 방상 역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지난 삶에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비록 한국에서 자라진 않았어도 같은 한국인 핏줄을 가진것 만으로도 이렇게 서로 편안하고 이끌리게되는구나.
엄마의 남친인 방상과 내가 둘이 있는 모습을 본 릴루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물속에서 갖가지 기술(?)을 보여주면서 내 이름과 방상 이름을 수십번씩 불러댔다ㅋㅋ
잠시 후 릴루네 할머니께서 오시더니 나에게 말씀하셨다.
"릴루가 너무 귀찮게 하지는 않아?"
"괜찮은데요?"
"그럼 다행인데... 쟤는 선을 그어줘야 돼. 혹시라도 쟤가 너무 귀찮게 굴면 꼭 엄한 목소리로 그만하라고 말해 줘."
"저는 릴루가 저를 환대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조금 전에도 저는 릴루한테 제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말해줬어요. 진심이예요. 저를 얼마나 잘 챙겨주는지 몰라요."
할머니의 표정이 그제서야 풀리셨다. 내가 괜찮다고 하는 말이 빈말인줄로 아셨나보다.
"릴루는 제 조카 어릴적 모습이 떠오르게해요! 저희 언니한테도 릴루 사진 보여주면서 릴루에 대해 말해줬더니 같은 말을 하더라구요."
어느새 다가온 릴루의 엄마 제랄딘이 너무 감동받아 울것만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하지만 릴루도 사춘기가 되면 내 조카처럼 시크해질거야ㅋㅋㅋㅋ"
내 말에 다들 웃었다.
잠시 후 방상이 땅콩을 드디어 다 빻았다고 말했다.
"근데 그거 왜 믹서기로 안해?"
내 말에 방상과 제랄딘이 할 말을 잃은 채 입을 크게 벌리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생각을 못했단다ㅋㅋㅋ 내가 미리 말 안해줘서 미안해 ㅋㅋ 일부러 손으로 하는줄 알고...ㅋㅋㅋ
버거씨가 나를 데리러왔다.
점심식사전에 우리는 보졸레 와인을 시음하기위해 와이너리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기때문이다.
"아빠도 같이 가고싶다고 하시는데 괜찮아?"
"괜찮냐고? 오히려 더 좋지~!!"
새어머니까지 우리 네사람은 버거씨 차를 타고 우리가 묵는 숙소로 다시 돌아갔다.
나 벌써 버거씨네 가족이 다 된것 같다.
버거씨가 들었으면 무슨 소리냐고 당연히 가족이 맞지! 라고 큰소리 쳤겠지만-
이 가족과 편안하게 어울리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참 보기좋다.
릴루야 그래서 나 언제 초대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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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모든게 완벽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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