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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나 생일 선물로 명품백 받았다.

by 요용 🌈 2025.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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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미역을 사오신 엄마가 말씀하셨다. 
 
"이걸로 금요일날 미역국 끓여줘야지." 
 
"누구 생일이야??"
 
헤맑은 내 질문에 엄마가 건조하게 대답하셨다. 
 
"니 생일." 
 
오잉?? 내 생일은 아직 안됐는데?? 
 
달력으로 달려가는 나를 보며 엄마가 음력생일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오!! 진짜네!! 완벽하다~ 음력은 한국에서 보내고 양력은 프랑스에서 또한번 축하받고~~ 오예~~ 생각지도 못한 서프라이즈에 기분이 좋았다. 일부러 날짜를 이렇게 잡으려고 했어도 어려웠을것 같은데 제대로 얻어걸렸다ㅋ
 
 
생일 당일날 아침 엄마는 미역국을 한 솥 끓이셨다. 소고기도 넣고 들깨도 넣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엄마표 미역국은 정말 맛있구나. (한국에 살 때도 미역국은 내가 더 자주 끓였던지라...) 
 
이 날엔 우리 오빠도 왔다. 오송에 사는 오빠는 한우를 사와서 직접 불고기를 볶았다. (오송 한우가 유명한가?)
 
"동생 생일인건 또 어떻게 알고 소고기까지 사왔대?" 
 
오빠를 향한 엄마의 능청스러운 질문. 
내 음력생일은 나도 몰랐는데 오빠가 알고 왔을리가. 하지만 우리는 모두 오빠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뭐라고 대답할 지 기대했다. 역시 갈 길을 잃은 눈동자. 어..어쩌다보니 시간이 맞았단다. 괜찮아, 나도 몰랐어 내 생일. 

소주잔에는 소주가 아니라 무스카 화이트와인이다. 와인잔이 없어서 우리집에서는 이렇게 대충 마신다ㅋㅋ

 
한여름 녹음처럼 푸르디 푸르고 정겨운 내 생일상이다. 
땅두룹+산두룹(우리 오빠가 산에서 직접 채취해왔다) 그리고 쌉쌀한 가시오가피나물, 열무김치, 고추장아찌, 상추에 미역국... 
 
이 사진을 본 내 친구 알마가 깜짝 놀래며 부러워했다. 카자흐스탄은 매일 먹는 식단이 똑같단다. 감자+고기+빵.
어릴적엔 풀만 먹는 우리집 밥상이 불만스러웠는데 크고나니 이게 최고라는걸 알겠더라. (오늘은 생일이라서 불고기도 있으니 진수성찬 맞다.) 
 
저 스뎅 밥그릇은 프랑스 갈 때 몇 개 가져갈까 싶기도 했다. 튼튼하고 가볍고 얼마나 좋아ㅋ 
밥위에 특별히 아빠가 밤을 올려주셨다. 작년 가을에 직접 산에서 주워오신건데 아껴두신듯 하다.
 
식사가 끝난 후 언니가 주문 제작한 케이크를 꺼내왔다. 
 
저 생일선물로 샤넬 받았어요 여러분!!!!!!
 

 
네. 와동공주 바로 접니다. 
 
조카 나영이가 6살때였던가 울언니가 "우리공주~" 라고 나영이를 부르는걸 본 내가 나영이한테 장난으로 (하지만 진지하게) 말했었다.
"이집에서 너는 공주가 아니야."
6살 나영이가 깜짝 놀래서 쳐다보길래 내가 "할머니한테 물어볼래?" "할머니, 이 집에서 공주 나 맞지? 나영이 아니지?" 했더니 ㅋㅋㅋ 우리 엄마 진지한 표정으로 나영이 한테 "응 이집에서는 이모가 공주야. 나영이는 고잔동에서만 공주지. 와동에서는 이모가 공주맞아." 하시며 다 큰 내 머리를 소중하게 쓰다듬어주셨다. 그 모습을 본 우리 언니가 "둘이 자~알 한다, 애앞에서" 하면서 혀를 찼음ㅋㅋㅋ
봤지, 나영아? 와동 공주는 나라니까 ㅋㅋㅋ 니네 엄마도 인정했네ㅋㅋ
 
 

케이크 너무 이쁘다 언니야~ 
다음에 돈 많이 벌어서 진짜 백도 사줘라~ 


불끄고 온 식구들 다같이 생축송을 불렀다. 내 생일인데 내가 젤 크게 불렀다. 사랑하는 와동 공주의~~
 
근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만원짜리를 한 장 꺼내시더니 예쁜 샤넬 케이크위에다 지폐를 척! 하고 붙이시는게 아닌가!? 

 
2초간의 정적 후에 다들 빵 터졌다ㅋㅋ 
할머니 이거 돼지머리 아니야... 
 
지폐도 케이크도 조금씩 오염됐지만 우리 엄마가 오염된 부분은 본인이 드시겠다고 쿨하게 말씀하셨다.
검은 크림이 묻은 지폐는 내가 닦아서 잘 챙겼음ㅋ
 
할머니는 조금 전 식사도중에도 갑자기 우셔서 우리를 당황시키셨다. 우리 삼남매랑 조카들까지 오랜만에 한자리 모인 모습을 보니 그냥 눈물이 난다고 하셨다.
음? 그러고보니 그러네. 어느덧 함께 나이들어가는 우리 삼남매가 모였고 이제는 다 자라서 능글맞아진 조카들 얼굴을 보니 나도 좀 뭉클하긴 했다. 
엄마 아빠 할머니는 그 만큼 연세가 더 드셨다. 
 
세분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아무튼 오늘도 할머니 덕분에 잊지못할 에피소드가 또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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