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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16살 프랑스 친구네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았다.

by 요용 🌈 2025.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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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중 가장 연소자인 16살 엘리야가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우리 엄마랑 내가 저녁식사에 널 초대하고 싶어.]
 
음... 
일전에도 집으로 두 사람이 나를 초대했었는데 거절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거절하기가 애매했다. 엘리야랑 친구지만 나이는 걔네 엄마가 내 또래라서 어쩌다 이 집 모자 두 사람 모두 내 친구가 되었네.

엘리야 모자가 사는 곳은 공동묘지 바로 앞이었는데 공동묘지 뷰가 이리도 아름다울 일인지! 완전 공원이나 다를바가 없다. 차이점이라면 공원보다 더 조용하고 평화로움. 

 
"생각보다 뷰가 너무 아름다운데? 혹시 저기서 조깅하는 사람은 없어? 나라면 맨날 저기가서 조깅할거같애 ㅋㅋ" 
 
내 말에 엘리야네 엄마가 대답했다. 
 
"내말이!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거든. 근데 지금까지 저기서 조깅하는 사람은 한번도 못봤어... 조깅할 장소는 아닌가봐." 
 
"뭐어때. 맨날 개방돼 있는데 가서 한바퀴 뛰고오면 엘리야가 이렇게 말할거야. 엄마, 아까 옆에 같이 뛰던 아저씨는 누구야?ㅋㅋ" 
 
내 납량특집 농담을 조금늦게 이해한 모자가 3초후에 웃었다. 

소년 아니 소녀가 나를 위해 떡볶이를 해 주겠단다. 심지어 한국산 배맛 음료까지 꺼내는 엘리야. 
 
"야 떡볶이 하는데 흰옷이 웬말이냐!" 
 
내가 평소처럼(?) 핀잔을 줬더니 흰 자케을 부랴부랴 벗어던짐ㅋㅋ 
오늘따라 이쁘게 차려입었네. 이렇게나 신경썼으니 나도 오늘은 소녀라 불러줘야겠다. 

내가 한국인인데 한국 음식을 대접하는게 맞나며 엘리야네 엄마가 갸우뚱했다ㅋ 뭐 나야 다 좋으니까. 나를 위해 마음써서 준비해준 엘리야에게 고마울 뿐이다. 
잠시 후 메인 요리로 엘리야네 엄마가 주키니를 넣은 파스타를 만들었다. 

간은 아무것도 안하고 치즈만 잔뜩 갈아넣었는데 맛을 안 보고 마무리하길래 평소 자주 만들던 요리인가 싶었다. 그런데 "내가 평소 요리를 안해서... 맛이 없을것 같아." 라는 그녀의 말에 살짝 움찔했다. 
음... 역시 아무맛이 안나. 
한입 딱 먹었을때 둘이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길래 무슨말이라고 해야 할것 같아서 짧은 시간 고심끝에 이렇게 말했다. 
 
"오~ 나쁘지 않아!"
 
실제로는 나빴다. 뻑뻑하고 느끼해서 목구멍으로 안넘어갔다. 이걸 어떻게 다 먹나... 
부디 엘리야가 이 글을 보지말아야하는데...

잠시 후 엘리야가 잠봉이랑 치즈를 가져와서 짠맛을 추가했더니 다행히 먹을만 해졌다. 
 

요즘 이 모자는 이 한국책을 읽는중이라고 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이야기도 이 책에 실려있었다. 여러 작가들의 짧은 이야기들이 수록돼 있었는데 다 재미있었다고 했다. 
 

또다른 가족인 고양이가 뒤늦게 우리 토크에 합류했다. 저기 앉아서 나를 보며 천천히 눈을 껌-뻑 껌-뻑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아이 이뽀라... 내가 쓰다듬어주니 가만히 음미하는 녀석. 

후식으로 직접 구운 초코케이크를 먹었는데 이거는 진짜 맛있었다. 
 
엘리야네 엄마는 고등학교 프랑스어 교사인데 요즘 방학이라 한 외국인 여성에게 프랑스어 개인교습을 해 주고 있다고 했다. 내가 한국어 수업을 시작했다고 했더니 잘 됐다며 본인의 경험을 들려주고 응원해주었다. 그리고 전남편과의 이혼 절차에 대한 조언도 아낌없이 해 주었다. 
 
엘리야는 두 아줌마가 수다를 떠는동안 꽤 조용하게 앉아있었다. 요즘 방학인데 집에서 잘 안나간단다. 그래서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나를 초대한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나중에 내 친구들이랑 만나면 잊지말고 엘리야도 불러줘야겠다. 10대의 질풍노도를 무사히 지날수 있도록 내가 열심히 옆에서 놀려주고 웃겨줘야겠다. (가끔은 진지하게 들어주기도 합니다....)
 
오늘 초대해 줘서 고마워 엘리야 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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