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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그네타고 노는 중년 커플

by 요용 🌈 2025. 8. 14.

아침식사로 사무엘의 아들이 가져왔던 쿠키, 도넛, 머핀이 남아서 마저 해치웠다. 

젊은 총각이 먹을걸 어찌나 바리바리 많이 들고왔던지 버거씨랑 둘이서 며칠동안 잘 먹었다. 

머핀속에 블루베리가 들어있어서 상큼하고 생각보다 맛났다. 

그래 이게 사는 맛이지ㅋ 맛있는 맛! 

 

 

맛나게 아침을 먹고나서부터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날씨가 너무 우중충하네... 

 

낮에 버거씨가 부엌 테이블에 앉아 재택근무하는 동안 나는 거실 소파에 기대누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이따금씩 버거씨가 화상 회의를 하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했다. 

세상 자상한 우리 버거씨가 일 할 때는 또 저렇게 칼같은 구석이 있구나... 

내가 평소에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볼 수 있어 재미있다. 또다른 매력이랄까. 푸훗

 

오후 5시가 되자 내가 심심할까봐 일찍 일을 끝냈다는 버거씨.

같이 나가서 산책을 하자고 하네. 좋지요~  

 

동네 아는(?) 고양이를 우연히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 나도 아는 고양이를 만나면 제법 말이 많아진다. 

 

너 요만할때 저기서 만나짜나... 너 그새 많이 컸다!? 

 

도망도 안가고 빤히 나를 보고 서 있길래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줄 알았다. 근데 내가 만지려고 했더니 앞발 방망이질이 연타로 날라왔다. 

귀찮게 하지말고 그냥 가던 길 가라는 건가 봐... 

응 알았다. 뻘쭘. 

 

 

어라? 동네에 놀이터가 새로 생겼네!?? 

 

냅다 달려가서 이 그네 내꺼! 하고 먼저 앉았다. 

버거씨는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큰 그네를 탔다. 

 

잠시 후 둘 다 전 속력으로 그네를 타고 높이 높이 올라갔다ㅋㅋㅋ 경쟁하듯이 최선을 다해서 말이다 ㅋㅋㅋ 

 

40대 아줌마랑 50대 아저씨가 놀이터를 만끽 할 줄이야. 

발을 이래이래 하면 나무가 막 뒤로가.. 마이 빨라... (동막골 대사가 갑자기 떠올라서ㅋ)

 

 

잠시 후 버거씨가 자기 그네 진짜진짜 재밌다고 한 번만 타보란다. 내 그네가 탐나서 그러는거 내 다 안다니까 웃느라 넘어가는 버거씨. 그게 아니라 진짜 재밌다고 자기 말 믿고 딱 한 번만 타보란다. 그렇게 사정한다면야... 내가 타 줘야지. 

 

이르케 누워서 타라길래 시키는대로 했는데... 

 

진짜 재밌네ㅋㅋㅋ

울엄마가 봤으면 난리 쳤겠다. 머리 지지한다고


버거씨는 가만히 내 그네를 밀어주면서 말했다. 

 

"구름을 쳐다보고 있으면 막 기분이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고 편안하지 않아??" 

 

응 그러네. 

 

한참이나 버거씨가 밀어주는 그네를 누워서 타고 있었는데 버거씨가 어느 순간 속삭이며 말했다. 

 

"음... 저기... 꼬맹이들이 왔다가 우리 때문에 못들어오고 다시 갔어. 엄마 델고 다시 올거같애..." 

 

나는 벌떡 일어났고 우리는 놀이터를 서둘러 떠났다. 

어흠흠.. 미안하다 얘들아. 인제 니들 놀아. 

 

 

이날 저녁때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버거씨가 문득 말했다. 

 

"나 원래 아이스크림 안 먹었다? 이거도 너 만나고 나서부터 먹기 시작한거야."

 

"음... 그럼 나쁜거야?" 

 

"아니, 사소한것들의 즐거움을 네 덕분에 알게 되었어. 내 아들들도 내가 너 만나고 많이 변했다고 말하더라. 이제는 아빠가 맥도날드도 먹고 아이스크림에 감자칩도 사준다고 좋아해. 이 아이스크림 하나가 이런 큰 기쁨을 주는데 이게 뭐라고 내가 그렇게 엄격했나몰라. 그냥 네 덕분에 나까지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아."  

 

(저렇게 말해도 우리 둘 다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지는 않아서 사다놓으면 아들들이 거의 다 먹는다.)

 

생각해보니 초반에 버거씨가 꽤 뻣뻣했던것 같기도 하다. 

그래봐야 지금은 하는 짓이 딱 나같아졌지만. 

 

그래 동심! 

그거지 그거. 

점잔빼지 말고 동심으로 한마음 되어 웃긴 콤비가 되어봅시다.

 

덕분에 특별한거 안해도 하루가 이렇게나 즐겁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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